17.11.2025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게임

게임 수의 증가

매년 출시되는 비디오게임의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Steam 통계 https://steamdb.info/stats/releases/ 를 보면 그 흐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게임 수는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플레이어 수도 늘고 있지만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그래서 신작이 주목을 받고 눈에 띄는 매출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성공적인 게임은 어떻게 만들까?
업계에서는 보통 간단한 접근을 택한다. 최신 트렌드를 관찰하고, 성공한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조합해 독자적인 해법을 내놓는 것이다.
트렌드와 기술은 10년 단위로 변해 왔다. 대략적인 그림은 다음과 같다.
1990년대: 2D 플랫폼 게임
2000년대: 3D 그래픽, MMORPG, 온라인 게임
2010년대: 모바일 게임, 소셜 농장 게임, 오토 배틀러
2020년대: 샌드박스, 오픈 월드, 생존, 제작, 활동 시뮬레이터, 공포, 협동 게임
2030년대: 아마도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생성하는 AI 게임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할지 모를 때, 시대별 조언은 달랐다.
- 2000년대: 예산이 충분하면 MMORPG, 그렇지 않으면 브라우저 게임
- 2010년대: 인기 있는 "소셜 팜"이나 "배틀 로얄"의 클론
- 지금: 감정을 자극하는 오리지널 협동 게임, 종종 하이브리드 메커닉
결국 게임 개발에는 세 가지 큰 접근이 있다.
1. 실험, ‘꿈의 게임’ – 매우 독창적인 프로젝트. 위험이 크지만 뜻밖의 히트를 만들 수도 있다.
2. 클론 – 최소한의 변화를 주고 게임을 제작한다. 가장 위험이 낮다.
3. 하이브리드 – 검증된 아이디어와 새 요소를 결합한다. 퍼블리셔가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이다.
또한 인디 개발의 성장을 언급해야 한다. 지난 10~15년 동안 중요한 아이디어 상당수가 소규모 팀이나 1인 개발자로부터 나왔다. 이는 경쟁을 키우고 업계를 변화시켰다.
고전적 접근의 문제
실험이든 클론이든, 개발 과정은 진화적이다. 지금 유망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골라 구현해 보는 것이다. 결과는 미리 알 수 없고 성공을 보장할 수도 없다.
운 좋게 성공작을 만들었다 해도 다음 작품을 시작하면 다시 불확실성에 부딪힌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후속작조차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한 예산과 마케팅, 경험을 갖춘 대형 퍼블리셔도 예외는 아니다. 자원과 검증된 공식이 있어도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스튜디오든 어려운 시기를 겪고, 관객을 잃고, 문을 닫을 수 있다.
다른 접근

게임의 성공이 반드시 복권처럼 운에 좌우되어야 할까? 아니면 더 예측 가능하고 반복 가능한 방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직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런 길이 보이기 시작한 듯하다.
시스템 공학적 접근, 특히 TRIZ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만드는 일을 진화적 시행착오가 아닌 합리적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방법은 새롭지 않다. 2010년대부터 일부 연구자가 게임 디자인에 적용하려 했지만, 게임 개발이 워낙 복잡해 널리 퍼지지 못했다.
목표 설정
이 방법론은 목표를 세우는 것에서 출발한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상적인 최종 결과는 무엇인가? 상업적 성공만을 노린다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게임이 어떤 모습인지 이해해야 한다.
이상적인 최종 목표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목표를 얼마나 명확히 규정하느냐에 따라, 개발 방향을 파악하고 트렌드를 예측하며 다양한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능력이 달라진다.
이상적 게임

‘이상적 게임’이라는 주제는 중세부터 철학에서 논의되어 왔으며 대개는 이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글에서는 철학적 논의를 깊이 파고들기보다, 그 아이디어에서 실질적인 가치를 끌어내 보려 한다.
이상적 게임은 보통 현실과 구분이 안 되고 플레이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으로 묘사된다. 폭넓은 정의이지만 중요한 요소들을 드러낸다.
- 플레이어는 사건의 참가자이자 관찰자가 될 수 있다.
- 장르나 배경, 줄거리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고, 플레이어의 요구에 맞춰 동적으로 변한다.
-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의 경계가 없다. 모든 NPC가 플레이어처럼 인식된다.
- 세계는 인위적 제약이나 스크립트 없이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평범한 장보기마저 거대한 모험으로 바뀔 수 있다.
물론 현 기술로는 그런 게임을 만들 수 없다. 다만 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게 해 주는 이정표다.
예측
이상은 도달하기 어렵지만, 업계는 조금씩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은 정교해지고 과거의 제약은 사라진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 움직임을 하나의 궤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현재의 게임 개발 수준이 출발점이고, 이상적 게임이 종착점이다.
여기에 새로운 게임 메커닉이나 아이디어를 대입해 볼 수 있다. 움직임의 방향을 따르는가, 옆으로 새는가, 뒤로 물러나는가? 새로운 자유도를 제공하는 게임은 궤도 위에 놓이고, 익숙한 메커닉과 제한된 자유를 결합한 게임은 옆길로 빠진다. 가능성을 줄이는 게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셈이다.
이상적 게임에 가까운 아이디어와 기술일수록 잠재력이 크다. 반대로 멀어질수록 잠재력은 작아진다. 높은 재현성과 모드 지원을 갖춘 샌드박스가 늘어나는 것도 그런 흐름의 징후다.
또 다른 요소는 확장성이다. 클릭커처럼 추상적인 게임은 깊이를 더하기가 어렵다. 추상 구조 자체가 발전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높은 잠재력이 곧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낮은 잠재력이 실패를 뜻하지도 않는다. 마케팅, 비주얼, 운, 아이디어가 관객을 끌어당길 수 있는지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
높아지는 플레이어 기대
플레이어는 더 많은 자유와 재플레이성, 다양한 가능성을 원한다. 새로운 감정과 유일무이한 경험을 추구한다. 그들의 기대는 높아지고 있으며, 직관적으로 이상적 게임플레이 모델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은 실험하고, 예전에는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요소를 결합하며, 논리와 상식을 시험하길 원한다. 확립된 장르와 메커닉은 점점 뒤섞여 독창적인 하이브리드를 만들어 낸다.
플레이어의 흥미를 끌 주제는 아직도 많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게임 개발을 움직이는 주된 힘은 자유·깊이·가능성의 확장이다. 가장 유망한 방향일수록 구현하기가 가장 어렵다. 진정으로 깊이 있는 게임을 만드는 일은 점점 복잡해지고, 강력한 샌드박스를 구축하려면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보편적 게임

무한한 샌드박스를 기반으로 삼으려는 장르가 있다. 바로 보편적 게임 장르다.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컴퓨터 게임에서 완전히 구현된 적은 없다.
전통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거의 모든 장르·배경·경험을 구현할 수 있는 통합 규칙을 지닌 게임.
이런 게임의 세계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을 조합해 블록처럼 조립한다. 예를 들어 배경은 현재인가, 미래인가, 과거인가, 대체 역사인가, 판타지인가, 포스트아포칼립스인가? 마법은 있는가? 초능력이나 사이오닉은? 캐릭터는 세계에 비해 얼마나 뛰어난가? 새로운 영웅인가, 절망적인 방랑자인가? 그의 이력과 동기, 결점은? 세계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가?
이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상적 게임의 조건을 충족한다.
실제로는 다음과 같이 동작할 수 있다. 시작할 때 플레이어가 원하는 경험을 정의한다. 예를 들어:
- "태양계 개척 시대의 우주비행사"
-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진화한 좀비"
- "몰락기 로마 제국의 황제"
- "온실 속 오이"
요청에 따라 시스템이 장르와 배경, 메커닉 세트를 선택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대한 콘텐츠와 시나리오에 맞춰 조합·재구성할 수 있는 보편적 메커닉이 필요하다.
복잡성
이런 시스템을 구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기능을 하나 더 추가하자’라는 전통적 발상은 통하지 않는다.
주요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복잡성. 규칙을 조금만 확장해도 행동 조합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 초점 상실. 플레이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수 있다.
- UX와 학습 문제. 보편성이 인터페이스를 과도하게 복잡하게 만든다.
- 밸런스 문제. 매우 다양한 시나리오가 서로 충돌한다.
- 높은 개발 비용.
예를 들어, 이 게임에서 세계를 어떻게 구성할까? 작은 숲이 있다고 하자. 이 숲은 가능한 모든 장르와 메커닉 조합에서 일관성 있게 작동해야 한다. 왜 존재하는가? 각 생물군계에서 어떻게 달라지는가? 어떤 매개변수를 갖는가? 가능한 행동은 무엇인가? 단독 캐릭터나 큰 집단이 상호작용하면 어떻게 반응하는가? 외계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도구에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가뭄이나 해충, 화재, 행성 폭격이 일어나면? 게임은 어떤 전개에도 적절히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테이블탑 시스템 GURPS를 컴퓨터 형태로 옮기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그 보편성을 완전히 구현하지는 못했다. Minecraft, RimWorld, Dwarf Fortress 같은 게임에서 부분적인 보편성이 보이지만, 이는 개별 요소에 국한된다.
해결책
이 절은 구현의 기술적 측면을 다룬다. 게임 개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내 생각엔 현재 기술로도 보편적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거의 10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이 결론에 도달했으며, 자세한 내용은 https://clarusvictoria.com/blog/almost-ten-years-of-search 에 정리했다. 다만 해결책은 기존 게임 개발 도구 밖에 있다.
코드와 게임 디자인 관점에서 게임 콘텐츠는 보통 하드코드(기능)와 콘텐츠로 나뉜다. 전투 시스템이나 이벤트 시스템은 하드코드다. 궁수나 의자는 콘텐츠다. 콘텐츠는 추가하기 쉽고 확장성이 좋다.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수천 개의 의자를 만들 수도 있고, 절차적으로 생성할 수도 있다.
반면 하드코드는 어렵다. 게임 구조를 바꾸는 수작업이며, 여러 기능을 조합하면 복잡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해결책은 전통적 하드코드를 콘텐츠로 전환하는 것이다. 앞선 예에서 전투 시스템이나 이벤트 시스템도 의자와 같은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즉, 규칙 자체를 콘텐츠화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게임 아키텍처를 인간의 언어와 비슷한 원리에 따라 설계해야 한다.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논리 시스템이 이미 존재한다. Web 2.0 프로젝트나 검색 엔진, 머신러닝 시스템에서 쓰이는 의미망(semantic network)이 그 예다.
의미망은 거의 어떤 복잡도의 지식이라도 의미 있게 서술할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들어 “인간은 포유류다”라는 지식은 ‘인간’이라는 개체가 ‘포유류’와 소속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자세한 내용: https://en.wikipedia.org/wiki/Semantic_network
게임 콘텐츠도 비슷한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 객체, 캐릭터, 사건, 규칙 등을 지식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정적인 지식이 아니다. 플레이어가 행위를 통해 세계의 상태를 바꾸는 에이전트가 된다.
이를 플레이어와 AI 세계 사이의 대화로 상상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버튼을 누를 때마다 인터프리터에 요청을 보낸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 건축가를 조종해 피라미드를 짓고 싶다면, “주어 – 건축가, 목적어 – 피라미드 계획, 동사 – 짓다”와 같은 간단한 문장이 요청이 된다. AI는 세계 상태를 분석하고 명령을 처리해 건축가를 현장으로 보낸다.
기술적으로는 ECS와 비슷한 데이터 주도형 아키텍처로 구현할 수 있지만, 의미 구조를 다룰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
계속해서
이 글은 이상적·보편적 게임 개념을 완벽히 설명하지 않는다. 전체 틀을 제시하고 방향을 보여 주는 것이 목적이다. 아키텍처, 의미 구조, AI 생성, 데이터 기반 시스템을 온전히 설명하려면 별도의 자료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글에서 유니버설 게임의 메커니즘을 보다 구체적인 요소로 나누어, 이 도입 글을 과도하게 무겁게 만들지 않으려 한다.
